KingShrimp 2020. 3. 27. 02:57

인권이라는 것이 있을까. 누구에게 똑같은 맑은 하늘이지만 인간의 수 만큼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게,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누구에게는 지옥과 같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순간으로...

 

  너무나도 행복해보이고 풍족한 장성 중인 국가 '비발디(Vivaldi)'. 새하얀 성에 갖갖은 빅토리아 양식의 아름다운 장식이 꾸며져있다. 만약, 당신이 이 나라에 오게된다면 분명 영국을 떠오를지도 모른다. 동화책 속 궁전과 같은 웅장함과 고급진 느낌의 이 비발디는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비발디 주변의 자연은 풍족했고 기사들의 명성은 연승으로 인해 나날이 높아갔다. 그 무엇하나 두렵지않은 나라 비발디. 신앙 또한 높아 신의 축복을 받는 국가라고도 불린다. 거리에서는 늘 고풍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처음 온 이방인이라면 누구든 이 나라에 매료될것이다. 동화책에 나오는 이 새하얀 성은 이 비발디이며, 소설에서도 연극에서도 많은 이들의 로망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 비발디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 자세한 지도 외에는 적혀져있지않은 마을로 비발디와는 큰 산맥을 넘어야만 보이는 마을이다. 가난한 마을이긴 하지만, 왕국의 도움으로 이 마을도 안전하고 나름 부족함없이 지내고있다. 그 마을 안에서는 요즘 화제가 되는 이야기가 입에 입을 타서 신나게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대신관이 말한 일식 때문이다. 

대대로 왕위는 일식이 일어나는 날 달이 해를 가렸다가 다시 뜰 때에 왕위를 넘겨주면 왕족이 번창하며, 신이 내려준 왕에게 신탁이 들린다는 이야기가 그 소문의 진상이다. 우물에서 물을 뜨고 옆에서 빨래를 방망이로 쳐내던 아낙네들은 신에게 신탁을 들을 왕이 누구일지 한 참 이야기 중이다.

 

 

 

 

"대신관님의 얘기로는 한 달뒤면 왕위선발이 이뤄진다는데 정말일까? 이번 왕자님들은 얼굴도 출중하다던데!"

"얘는, 얼굴 뿐이니? 이번 왕자들은 재능도 뛰어나다 잖아."

 

"그렇지? 하지만 역시 제일 1위 후보는 그 왕자님이지. 현재 폐하의 눈총과 대신들의 기대도 받고 제1황비의 브리안테 왕자님!"

 

"그렇지 모두 제1 왕자님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으니까."

 

"왕자님이 왕위에 오르시면, 드디어 꽃! 우리같은 서민들에게도 기회가 올 그 무도회!"

 

"에리카, 너 사실 그게 목적이지?"

 

"우리 딸이 이번으로 성인식을 마침 마쳤잖니. 얘, 공작저나 백작가에 아는 사람있다며? 우리 애는 얼굴이 훤칠하니까 데려가줘. 내가 꼭 보답할게."

 

"얘는? 아직도 동화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건 아닐테고. 또 네 딸 릴라가 졸랐지? 현실을 알잖아."

 

 

 

 

 

 하하호호 웃으며 어떻게든 성에 들어갈 찬스를 노리고 있다. 당연히 평민에게 왕자를 볼 기회조차 없으며, 무도회에 갈 수 있는 방법 또한 없다. 뒷거래가 이뤄지기는 하지만, 이 조차 거액이 오가고 본다해도 왕자의 행차 정도일지도 모른다. 이를 알 리가 없는 어떤 평민층은 돈만 잃은 일이 다수라고도 한다. 이를 잠잠히 들으며, 좀 떨어진 곳에서 스탠드에 판넬을 세우고 유화 물감을 슥슥 바르던 소년은 인상을 구기며 붓을 부러트렸다. 그리고는 터벅터벅 걸어와서는 아낙네들을 따갑게 노려보고는 언성을 높혔다.

 

 

 

" 왕국따위에 왜 로망을 갖는거야? 바보! 멍청이! 차라리 빨래를 두들기는 소리가 훨 낫겠어 멍청이들!"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소년은 한 아낙네가 길어뒀던 물통을 들어 아낙네들에게 확 부어버리고는 혀를 내밀고 그 자리를 떴다. 아낙네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거나 물로 인해 젖어버린 옷을 보고 울상을 짓거나 짜증을 냈지만 이미 그가 떠난 이 후이고 쫓아갈 생각은 없었다.

 

 

"마을 촌장님만 아니었으면 굶어죽었을 주제,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기어오르는거람?"

 

"냅 둬. 반 쯤 미쳤다고 하잖니. 똥이 무서워서 피한다니? 더러워서 피하지. 이 마을에서 촌장님 아니면 어짜피 저 놈을 감쌀 사람도 없을 걸? 촌장님이 돌아가시면 바로 내 남편에게 말해서 쫓아내자고 해놨으니까."

 

 

 

 

 

*

 

 

 

 

"멍청이들! 저 성이 저주의 성인지도 모르고말야..."

 

 

 

얼핏보면, 작은 체구의 소년. 하지만 나이는 이제로 만 20이 된 어엿한 성인남성이다. 잘라주는 이가 없어 어깨까지 허리까지 내려온 긴 머리카락은 뒤에서 본다면 여성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는 불만스러운 말을 내뱉으면서 낡은 나무로 끼긱거리는 침대에 풀썩 눕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낡고 누군가는 창고로 썼을 듯한 이 곳이 바로 그의 집이었다. 어릴 적 살기위해 그저 도망만을 쳐온 10살짜리 꼬맹이는 10년 가까이 이 곳에서 촌장의 보호 덕에 커 온 것이다. 촌장은 자신을 데려올 때 한 가정의 아버지였으며, 자신의 또래의 아이가 둘이 있었다. 여자아이 로라와 남동생 루스였는데, 루스는 밝은성격으로 마을에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병약한 몸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기일에 자신을 발견하고 루스가 환생해 온 것 같았다는게 촌장이 자신을 데려온 이유다.

 

  촌장을 아버지같이 대하고 마음을 열었던 날 밤 자신이 촌장 부부의 대화를 엿들며 알게된 이야기. 로라가 그렇게 자신을 미워하고 가끔 자신을 보는 눈에 타인같이 비춰지는 이유가 그 이유였다. 그 일 이후 촌장에게 아들마냥 일을 배우고 마을 사람들의 일을 돕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저 도끼질을 가끔하고 망연하게 성을 그림에 담았다. 그렇게 싫어하는 성을 캔퍼스에 담았다. 촌장 부부는 그런 자신을 혼내지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혼내지 않았다. 가끔 자신이 말썽을 피워도 상처주는 말을 뱉어도 같이싸우나 하다가도 그만두고 피해갔다. 침대에서 몸을 틀어 보이는 창문 틀. 그 곳에 보이는 작은 새하얀 성. 

 

 

 

"저주의 성에 다시는 가지않아."

 

 

그렇게 다짐을 하며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이윽, 얼마나 잠이 든 걸까. 까칠한 목소리가 문을 쾅 열면서 들려왔다. 자신보다 키가 조금 크고 노란 머리칼이 자랑인 로라였다. 마을 안에서 그녀는 꽤 미인인 축에 낀다지만 자신에게는 그저 날카로운 잔소리꾼이다. 

 

 

"엘런! 저녁시간이야! 잠은 밤에자는게 정상아니니? 어휴, 냄새! 얼른 밥먹으로 와!"

 

 

쌓여진 먼지때문인지 낡은 창고의 냄새때문인지 그녀는 콜록 거리며 손을 저은 후 늘 그렇듯 쏴붙이고 나갔다. 어릴 적에는 자신과 로라의 사이를 두고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럴 걱정은 덕분에 없다. 로라를 노리는 남성들에게도 이미 엘런은 눈 밖으로 확정나서 편하면 편하다. 몸을 일으키고 머리를 긁적이며, 그새 컴컴하게 어두워진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하늘은 멈춰진 것만 같이 평범했다. 로라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 촌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하하호호 따듯한 분위기는 어릴 적 끝난지 오래다. 그저 묵묵한 정적의 집 안. 물론, 엘런이 없으면 나름 밝은 집 안이다. 맛있는 스튜의 냄새가 고소하게 풍겨왔고 모두 자리에 앉은 상태로 자신의 등장에 시선이 몰렸다. 촌장의 입은 웃으며 자신에게 앉으라 권했지만 그 미소가 형식적인 것을 엘런은 알고있다. 자리에 앉자 늘 그렇듯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식사가 시작되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빵 반 조각과 스튜, 옥수수 샐러드, 한 사람당의 햄 두 조각. 취향마다 곁들일 잼과 버터. 엘런은 빵을 쭉 찢어서 버터를 바른 후 입에 가져가 물 쯤 침묵 속에서 촌장은 입을 열었다.

 

 

 

"엘런, 이번에도 또 소란을 피웠더구나. 이번은 심하지않지만, 너도 나이를 먹었잖니. 이 곳에서 점점 미움을 살 짓은 하지말거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촌장부인과 로라는 자신을 쳐다보았고 이미 자신은 타인으로 미운취급을 받고있을텐데도 울컥 화가 올라왔다. 아직까지도 자신은 이 사람의 기대를 바라고있었다. 실망시키고 싶지않다는 마음이 깊숙히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은 어디선가 부터 솔직하지 못하고 삐뚤어져버렸다. 빵을 빠르게 우적우적 입에 넣어 삼키고 햄 두개를 빠르게 게걸스럽게 먹고 물을 들이킨 후 쾅 내리쳤다. 틀린 말도 아니건만, 이런 사소한 것에 화가 올라오는 것은 아마 그 '새하얀 성' 때문일 것이다.

 

 

 

" 그 저주의 성을 조심하라는게 뭐가 잘못됐어?! 다들 하나같이 동화같은 망상에 빠져서! 성인식을 치뤘다고 왕자의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아짜피 똑같은 얼굴일텐데 기대하는 것도 우스워! 바보들! 난 틀리지 않아! "

 

 

 

그렇게 소리를 버럭 내버리고 촌장의 집에서 벗어나 달렸다. 깊은 숲 속으로 가는 길인줄도 모르고 계속 달렸다. 무엇보다 싫은 것은 자신이었다. 깊숙히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자신의 어릴 적때 처럼. 자신이 저 촌장의 타인으로 알게되었을 때의 그 설움 때 처럼. 몬스터로 특히 밤의 숲 속은 위험했다. 도움을 받기도 어려울 뿐더러 숲 속은 길을 다 뚫지 못해서 위치조차 알기힘들다. 한 번 들어가면 살아오는 사람도 적고 운이 좋아서 나오는게 이 숲 속이다. 자신이 그 숲 속을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호수의 요정 덕분이었다. 참 신기하게도 자신은 눈을 감고 달렸을 뿐인데 그리운 그 큰 호수의 앞에 다 달았다. 그 때도 지금처럼 어두운 밤이었고 초승달이 호수 한 가운데에 비춰져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보고 어릴 적도 지금도 마음이 놓이기 일쑤였다. 헐떡이던 숨을 고르곤 호수의 가까이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호수는 너무나 맑았고 너무나 빛이 났다. 그 아름다움에 서러움이 올라와 어릴 적에 크게 소리내서 울었었지. 어른이 된 자신은 크게 울수없게 되었다.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제한되는 것이 늘어난다. 이 곳에서 소리내서 울어도 될지도 모르지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머리에 박혀버렸다. 그저 올라오는 소리없이 두 눈에 떨어지는 눈물로 대신하였다.

이렇게 울 때는 그 때가 너무나 그립다. 이 빛나는 관경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요정님. 어릴 적의 꿈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다정하고 따듯했던 그 요정이 너무나그리웠다. 천천히 입을 열어 요정이 알려준 이름을 괜히 웅얼거리게 불러보다 천천히 크게 불러보았다.

 

 

 

 

 

"디아나... 디아나!... 디아나!..."

 

 

 

 

 

하지만 정적과 흐르는 물 소리 뿐이었다. 허망함과 괜한 속상함이 더 밀려올 뿐이었다. 역시 어릴 적의 꿈이었다고, 현실을 받아드리라는 듯이 고요했다. 쭈그려 앉았던 다리는 풀려 그저 풀썩 몸이 기우려져서 넘어졌고 그대로 몸이 이끄는대로 벌러덩 누워졌다. 그리고 컴컴한 밤하늘을 다시 올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아무래도 좋아졌던 그 때와 똑같이.

 

 

 

"여기서 잠자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지?"

 

 

 

익숙하고도 깨끗한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어릴 적도 이런 소리를 들었던가 자신이 기다리고 그리워하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자신의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가까웠고 시원한 냄새마저 어릴 적의 기억 그대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게 달빛에 비춰지는 은은한 은빛 머리카락에 에메랄드 마냥 녹색 보석의 결정같은 아름다운 눈동자. 자신이 기억한 아름다운 요정이 옆에 바로 있었다. 달라진게 있다면 자신과 똑같이 성장해서인가 성인의 모습이이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뺨을 쓸어만진다. 따듯한 온기... 허상이 아니었다.

 

 

 

 

"요정님...? 정말 요정님이야? 하, 하하!... 하하하! 꿈이 아니었어."

 

 

 

 

너무 기쁜나머지 생각한 그대로 기쁨과 반가움의 말이 쉴새없이 내뱉어졌다. 요정은 그런 엘렌을 당황스런 표정으로 두 눈을 꿈뻑이며 바라보다가 한 대 쥐어박아서야 그의 환영이 끝났다. 한 숨을 쉬면서 도도하게 다리를 꼬아 앉고는 팔짱을 낀 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 환영이 싫지않은지 작게 입가에 미소라 지어졌지만, 엘런에게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요정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그래, 요정님이야. 그 나이가 되서도 요정이라고 믿는게 신기할 정도다. 다시 널 볼 일이 일어날줄은 몰랐지만... 네가 불렀잖아? 그 이름, 너밖에 모르니까."

 

 

 

자신이 몇 번이나 캔버스에 담으려해도 이상하게 그려지지 않았고 점점 희미해져갔던 요정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서서히 사라져가던 기억이 단숨에 올라와간다. 전부는 아닌 듯했지만 존재만으로 기뻐서 자신이 슬퍼했던 것은 금새 잊어버렸다. 요정의 손을 잡아 그저 어린아이 처럼 웃었다. 그런 그를 느끼하다는 듯이 바라봤지만 떨쳐내지는 않았다. 

손의 감촉이 예전과 달랐다. 예전이 어땠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부드러웠고 여성의 손을 잡은 것 같이 가늘었는데, 지금은 자신과 같은 남성의 손과 같았다. 그 뿐인가 도끼질을 하는 자신의 손에 뒤쳐지지 않을만큼 굳은 살이 조금 있었다. 그러고보니 존재 자체가 좋아서 제대로 아는 것이 적었던 요정. 디아나라고 부르라는 이름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자신이 묻기도 전에 자신과 마음이 통했는지 어떤지 몰라도 디아나가 먼저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남자야?"

 

 

그의 질문 하나에 뭔가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여성같은 것은 요정 쪽이었다. 여리여리한 몸에 피부살결도 투명하게 하얗고 딱봐도 여성과 같았다. 어릴 적엔 그래서 성별을 신경쓰지 않았지만 여성으로 자신은 줄곧 믿고있었으니까. 목소리도 지금과 별다를게 없지만 가늘고 속눈썹도 긴게 아무리봐도 여성이었는데, 설마하며 자신도 같은 질문을 했다. 둘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자신은 크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디아나는 황당한 표정이 바뀌지 않았지만.

 

 

 

 

"디아나, 아무리봐도 이 얼굴에 이 목소리가 여자라는건 아니지...! 거짓말이면 진짜 화낸다?"

 

"뭐? 장난쳐? 머리는 왜그렇게 긴건데? 네 체형은 아무리봐도 여자거든? 안믿으면 보여줘?"

 

 

 

보여줘야 알겠냐는 말에 살짝 말문이 막혔지만, 진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냥 꿈 속의 요정님으로 무성이나 여성으로 혼자 오해해도 괜찮았지만 사람이란 호기심이 풍부한 동물이다. 무엇보다 엘런은 그가 요정이 아닌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의 말과 함께 하나하나가 충격적이기도 해서 실제로 만져서 촉감으로 알아야 할 기분이었다. 

 

 

 

"....야, 정말 보여달라는거야? 잠, 잠깐만... 왜 손이 점점 올라오는건데? 만지라고는 안했거든? 야, 야아!"

 

"어짜피 꿈을 깨서 현실을 보여줄거면 제대로 보자. 요. 정. 님! "

 

 

 

그렇게 디아나의 소중한 그것을 만져보려는 엘런과 사수하려는 디아나는 작은 몸싸움이 이뤄졌다. 멀리서보면 참 민망한 포즈로 자신의 것을 드레스로 감추려는 여성마냥 옷을 늘여 잡고 아래를 디아나는 감쌌고 치마를 들추려는 어린아이마냥 엘런의 시도는 이어졌다. 그러다 서로의 발이 엉켜 그대로 디아나의 위에 엘런이 넘어졌다. 긴머리카락이 살랑이며 몸을 엘런이 일으키자 자신의 밑에 디아나는 으르렁 거리면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민망해서 일어서려고 할 쯤 디아나는 자신의 상의를 조금 풀어내고 평평한 가슴에 엘런의 손을 올렸다.

 

 

 

"나이 20되서도 이런 형태의 가슴은 남자밖에 없어. ...그것도 못믿으면... 같이 호수에서 벗는걸로 합의해."

 

 

 

자신의 손에 닿는 감촉은 정말 사람의 온기와 부드러운 피부였다. 디아나는 말이 끝나자 제 손을 놓아주었고 침묵이 이렇게 디아나와 있을 때 긴 것은 처음이였다. 민망함에 바로 옆으로 쓰러져 앉았고 차마 얼굴이 뜨거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같은 남성의 가슴 하나 만진 것인데 왜 창피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마을에서 동네 아이들과 물놀이 할 때나 다른 녀석에게 닿을 때는 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상한 감각이 묘하게 돌았다. 한 참 후에야 자신은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미안. 그, 그러니까 디아나. 너는 인간...인거지? 그것도 남자고."

 

 

"...어. 그것도 어엿한 성인. 그 디아나란 것도 가짜고."

 

 

 

 

가짜라는 말에 또 어이가 없어서 디아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자신의 시선에 디아나는 모르쇠 고개를 따라 반대로 돌려버렸다.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저 놈이 자신을 놀렸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 꿈이 깨진 것과 별개로 그와 긴 대화를 해야할 것 같았지만, 서로 그냥 말이 없었다. 그저 디아나도 자신도 누워서 밤 하늘을 올려볼 뿐이었다.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디아나와의 만남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고 디아나는 같은 성인 남성으로 무엇보다 자신은 이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정도로 기쁘고 좋다는 것이다.

 

 

 

"그럼, 또 여기서 볼 수 있어?"

 

 

 

보통의 남성끼리 이런 말이면 닭살이 돋는다던가 오글거린다던가 그런 느낌이나 말이 오갈테지만 디아나와는 달랐다. 정말 자신은 디아나와 더 만나고 싶었고 그와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또 몇 년 후에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영영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고요한 밤하늘 아래 숲 속에서는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이 들리는 정적. 디아나는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옆에서 보았을 때 슬픔이 있었지만 이내 무언가 다짐한 듯했다. 자신에게 고개를 돌려 자신의 푸른 눈을 응시하고 몸을 돌렸다.

 

 

 

"너가 원하면. 또 디아나라고 불러보던가...? 혹시 모르잖아? 또 나랑 만날지."

 

 

 

 

그는 작게 입가에 미소를 짓고서는 바라보았다. 아마, 그도 자신과 만나는 이 우연같은 기적을 믿고싶은 것이겠지. 무언가로 자신과 디아나가 이어져있음을 자신은 믿고있었다. 그렇기에 디아나의 말을 믿고 자신도 미소를 띄으며 디아나 쪽으로 몸을 틀어 마주보았다. 물이 잔잔히 흐르는 호수의 소리와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디아나의 손을 천천히 잡아 깍지를 끼고는 눈꺼풀을 천천히 닫았다. 이런 안정감과 따스함. 몇 년만일까. 이 곳에 와서도 가족이라 착각했을 때도 자신은 이런 편안함을 가진 적이 없다.

 

 

 

 

 

 

*

 

아틀리안, 레인, 미카엘, 이사벨. 아사벨라